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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5.12.30 Torro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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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2005.11.20 Sor, ('Beethoven of the Guitar')
  17. 2005.11.18 Tarrega, ('Sarasate of the Guitar')
  18. 2005.11.12 Granados
  19. 2005.11.12 Albeniz {the Taste of Spain} 1
  20. 2005.11.12 Guitar 음악을 공개합니다

왕&수

♩Guitar 429 2006. 2. 24. 11:11

Wang Yameng& Su Meng

[2005. 5. 1, 서울 영산아트홀 연주회 실황]

Wang Ya Meng (중국, 1981 ~ )

Su Meng (중국, 1988 ~ )

그 날 3시 공연을 관람하면서, 다시 한 번 이 시대 정상의 거장에 손색이 없는 젊은 천재들의 기량을 현장에서 만끽하는 희열과 감격에 몸을 떨면서도, 한편으론 다소 썰렁한 객석 분위기가 연주자들의 세계적 명성에 너무도 어울리지 않다는 민망함에,아직은 어설프기만한 우리나라 기타음악계의현주소를 목격하는듯한 부끄러움과 아쉬움을 씻을 수 없었습니다.
연주회가 그 격조에 걸맞는 성황을 이루지 못 한 데에는 그야 여러가지 원인이 있었겠지만 '홍보부족'도 그중 하나라고 생각되기에, 일수거인은 뒤늦게나마 의 진면목을 일반에게 홍보하는 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여, 당초 '비공개'로 올려놓고 혼자서만 즐기던 이게시물을약간 손질하여'공개페이지'로 전환키로 하였습니다. 그럴 리는 없으리라 생각되지만, 혹시 누구라도 '저작권' 등과 관련된 사유로 정당한이의를 제기한다면 그 즉시 다시 '비공개'로 되돌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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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연주회를 주최한 "알마기타" 홈페이지(http://www.almaguitar.com)에 수록된 연주자소개 자료를, 아래에 수정 없이 전재합니다.]

Wang Yameng은 1981년 11월 2일, 산동성 청도에서 출생 하였으며, 10살때부터 Chen Zhi 교수의 문하에서 엄격한 기타 교육을 받게 된다. 이것은 청도~북경을 매주 왕복하는 40시간의 기차 여행을 감수하며 이루어진 2년간의 노력끝에, 12살의 어린 Wang 은 이미 최고 연주자의 수준에 올라서게 되며,, 1993년 12월 중순, 제 36회 동경 국제 기타콩쿨에 도전한다.

이 콩쿨에서는, 10개국이 넘는 나라에서 무려 52명의 잘 훈련된 기타리스트들이 참가한 대회였으며, (캐나다,프랑스,미국,이탈리아,독일,일본,한국,말레이시아,대만 등등) 국제기타콩쿨 사상 최연소 우승 및 첫 도전 우승이라는 2개의 타이틀을 수립,갱신하며 대상을 차지하여, 세계를 놀라게 한다.

1993년 북경을 방문한 존 윌리암스는 Wang Yameng의 재능에 크게 놀라워하며, 자신이 사용하는 기타를 (그렉 스몰맨) 그녀에게 선물하는 파격적인 모습을 보였으며, 호주로 돌아간 그는 또한대의 스몰맨을 북경에 보내어 천쯔교수 또 다른 제자 양쉐페이에게도 선물하는 감동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GHA 발매의 그녀의 첫 음반은, 이 스몰맨으로 녹음되었다.

1994년 홍콩,대만,일본을 아우르는 연주회를 성공적으로 마친 그녀는, 1995년 9월 25~29일 이탈리아에서 열린 제28회 알레산드리아 국제 기타 콩쿨에서 2위에 입상하고, 다음해인 1996년 스페인의 크리스티나 국제 콩쿨에서 2등을 수상한다. 동년, 프랑스 국영방송 주최 제27회 파리 국제기타 주간에 초청되어 연주회를 갖게 되며, 뒤이어서 이탈리아, 스페인등 순회연주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사용악기~Greg Smallman, Mario Gropp
Kim Hee Hong (Alma-double top Master 스푸르스 650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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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중국 산동성 청도에서 출생한 Su Meng은 5세때 기타 공부를 시작 하였으며, 9세때 천쯔 교수의 문하에서 공부를 시작하게 된다. 12세때 중국 최고의 콘서바토리인 국영 중앙음악학원 부설중학교에 입학한 그녀는, 기타리스트겸 작곡자 Assad 형제와 파리 국제기타 콩쿨의 주석인 R.Vidal, 영국 왕립 음악학교 클래식 기타과 주임인 Prof.M.Levin 등등 국제적인 기타 전문가들로부터 초청되어 연주 하였으며, (2000년) 북경 음악홀, 중산 음악당, 심천 대극장, 곤명 대회당 등지에서 독주회를 개최 하였다.

14세때인 2002년 "전 중국 음악가" 대표의 자격으로 제5회 빈 국제 청년 기타콩쿨에 참가하여, 뛰어난 테크닉과 표현으로 전체 심사위원을 놀라게 하였으며, 이 콩쿨에서 1위를 수상 하였다. 2003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독주회를 개최하며 국제무대에 공식적으로 데뷔 하였으며, 6회에 걸친 앵콜 요청과, 10분간 청중들의 기립박수를 받는 대성황을 이루었다.

2005년 제 28회 동경 국제기타 콩쿨 1등 수상. Wang Yameng 에 이어서 또다른 동양의 별이 나타났다고 일컫는다.

사용악기~ Kim Hee Hong (ALMA double top Master- 스푸르스 650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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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lla-Lobos

♩Guitar 429 2006. 2. 22. 17:45

빌라로보스



Heitor Villa-Lobos

(1887. 3. 5~ 1959. 11. 17)

중남미 최고의 클래식 작곡가로, 오케스트라, 실내악 및 독주악기들을 위한 수 많은 작품을 쓴 [헤이토르 빌라로보스]브라질Rio de Janeiro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도서관 사서직을 하면서 많은 책을 읽고 높은 교양을 갖춘 아마추어 음악가였던 아버지에게서 음악을 배웠습니다. 1899년, 부친이 돌아가실 즈음, 11 살의 그는 이미 직업음악인의 틀이 잡혀 있었습니다. 초기에 그는 카페에서 첼로를 연주하며 생계를 꾸려갔습니다.

1905년, 빌라로보스는 브라질 북부지방 민속음악채집하기 위한 첫 여행 길에 올랐고, 그 후 그는 그런 여행을 여러 번 하면서 자기 주위에 신비로운 얘기꺼리들을 많이 만들어 냈는데, 예를 들어, 북동부 지역 식인종과의 모험담 같은 것은 꼭 액면 그대로 믿을 건 못 됩니다.

그 후, 그는 Rio de Janeiro 국립 음악원에서 공부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작곡 스타일이 학술적 규범을 따른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의 작품의 전형은 브라질 민속음악의 혼합체 같은 것이지만, 때로는 인상주의, 표현주의, 바로크, 고전주의 등의 형식요소등도 두루 병용하였습니다. 그의 음악은 항상 특이체질 같은 개인적 성향을 보였습니다. 여러 해가 지난 후 그 자신은 이렇게 술회하였습니다: "내 음악은 마치 폭포처럼 자연스럽다." ... "사람은 학술에 한 발을 들여 놓는 순간, 최악의 상황에 놓이게된다!"

1912년 아마존 오지에서 또 하나의 민족음악 여행을 하고 돌아온 빌라로보스는 1915. 11. 13일 Rio de Janeiro에서 그의 새 음악회를 열어 모든 사람의 귀를 번쩍 뜨이게 하였습니다. 그 후, 1922년 "현대음악주간" 행사에서 그 음악을 Sao Paulo 시에 소개하였습니다. 1923년, 이미 정부의 호감을 충분히 얻은 그는 국비로 파리에 유학하게 되었습니다. 1930년 귀국하여, 빌라로보스는 Rio de Janeiro 음악교육의 총수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조국의 음악교육가로, 빌라로보스 제2의 인생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브라질의 풍부한 음악적 문화에 기초하고, 깊고도 항상 뚜렷한 애국심에 뿌리를 두면서, 브라질의 여러 세대들을 위한 완벽한 음악교육 시스템을 설계하였습니다. 그는 민속재료들을 많이 사용하여 초대형 어린이합창단을 위한 합창곡을 작곡하기도 하였습니다. 오늘날 브라질에 남긴 그의 유산은, 삼바학교나 음악TV채널과 함께 성장해온 신세대들 속에서조차 타오르는, 강렬한 자긍심조국애입니다.

그가 좋아했던 브라질 소프라노 가수 Bidu Sayao와는 38년 간이나 예술적 유대를 지켰습니다. 1944년, 빌라로보스는 그의 작품을 지휘하러 미국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처음엔 비판과 환호가 반반이었습니다. 주요 새 작품들을 미국 오케스트라들에게 초연 시켰고, 심지어 1945년에는 헐리우드 영화 Green Mansions의 음악도 맡았습니다. 1940년대는 그가 국제규모로 대성한 시기였습니다. 작곡가지휘자로서, 빌라로보스는 LA로부터 뉴욕, 파리에까지 명성을 떨쳤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세계여행을 하면서도, 그의 집은 언제나 Rio de Janeiro에 있었고, 거기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헤이토르 빌라로보스는 Rio de Janeiro의 Sao Joao Batista 묘지에 묻혔습니다.


빌라로보스는 아마도 자신이 쓴 작품들을 부풀려 말한 것이겠지만, 아무튼 작품을 많이 쓴 사람으로 소문이 나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 작품의 편곡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특히 말년에는 옛날의 작품들을 아예 새로 쓰는 '재작곡'을 많이 하였습니다. 여하간에, 실종된 작품들 말고는, 매우 다양한 그의 작품들이 오늘날 세계의 음악회 무대들과 CD에 곧잘 등장합니다.

빌라로보스의최고 인기 작품은 the 5th Bachianas Brasileiras로, 원래는 8 대의 첼로가 반주하는 성악곡으로 쓴 거지만, 흔히 여러 다른 악기들의 조합으로 연주됩니다. 다음 순위로는 독주 guitar를 위한 전주곡, 연습곡, Choros 1 들이 꼽힙니다. 그의 가장 훌륭한 음악은 Choros, Bachianas Brasileiras String Quartet series 등에 들어있습니다, 다수의 피아노 독주곡 - 가령, Choros 5 Bachianas Brasileiras 4 등 - 들은 피아니스트들과 청중들에게 매우 높은 점수를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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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 정상수님 자료('94.10.22)에서 발췌한 "빌라로보스해설"을 덧붙입니다.]

중남미에서 출생한 최대의 작곡가로써 브라질에서 명성을 떨친 문인. 역사가이며 아마튜어 음악가였던 부친으로부터 음악을 배웠는데 어린 시절 첼로클라리넷을 공부하였을 뿐 아니라 피아노를 비롯하여 각종 현악기, 특히 브라질 기타의 연주에 능숙했다. 1887년 3월 5일 리오데지네이로에서 출생하여 이미 15세 때는 오케스트라의 첼로 주자가 되었다.


1905년 부터 민요 채집을 시작하였고 작곡 공부도 했으며 1907년 내셔널 콘서바토리에서 본격적인 학문을 훈련했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고 사적으로 그 연구를 계속했다. 1912년 스스로 네번째의 가장 대규모적인 브라질 대륙 깊숙한 지방의 풍속과 음악의 조사를 착수하여 브라질 음악의 특이한 성격을 깨닫고 1915년 이후 작품에 강한 향토적 개성을 발휘하게 되었다. 그는 기타에 강한 애착을 가지고서 기타 반주를 즉석에서 즉흥적으로하는 방법을지방 민요 가수들로부터 배웠다. 그러므로 그가 나중에 첼로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기타를 위한 수 많은 작품을 작곡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는 그것들을 콘서바토리에서 배웠었다. 10대(代) 시절부터 기타를 들고 거리의 방랑 음악가들과 함께 어울리기도 했던 적이 있는 그는 동부 브라질을 답사한 이후 20대(代)부터 모든 분야에 걸쳐 작품을 열심히 발표하기 시작하여 브라질 악계의 주목을 끌었다. 1923년 36세때 처음으로 유럽에 건너가 파리에서 유학.런던, , 베를린 등을 방문 구미각지(歐美各地)를 돌며 활동(자작지휘등)을 계속하였는데 브라질 시절 못지 않게 그의 명성은 각국에 알려졌다.


한편 그는 조국의 음악 환경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있는 힘을 기울여 "빌라-로보스 관현악단"의 창립과 브라질에 있어서 바하의 대작 초연 등 각지의 관현악단 합창단의 지휘자로 있었으며 학교용의 민요 수집을 완성했다. 해가 거듭함에 따라 그는 국제적 존재가 되어서 브라질 뿐만 아니라 신대륙음악 수준을 높힌 작곡가로서 우러러 보게 되었다. 빌라-로보스는 평범하지 않는 다산(多産)의 작곡가였다.
그의 작곡의 수는 넘버링의 방식여하에 따라서 800편에서 2000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의 가장 개인적인 혁신은 악기의 앙상블에 의해서 주로 야외에서 연주되어지고 브라질과 인디안의 민속음악의 요소들을 넣은 갖가지로 얻어진 소품들을 쵸로의 예술적 음악의 영역속에 소개했다는 것이다. 또한 그 자신의 작품들은 바하로부터 인상파에 걸친 유럽음악의 기교와 브라질 민속음악의 요소와의 융해로 특징지워진다.


기타곡은 그의 위대한 작품 리스트 중에서는 미미하게 보이나 언제나 유닉크한 미(美)를 높여 현대 기타음악의 귀중한 레퍼터리로써 애주되고 있는 것이다. 그의 기타곡중 가장 인기가 있는 것은 1908~1912년에 지은 "Suite populaire bresilienne" 와 1920의 Choro no.1 1929년 파리에서 작곡한 "12 Etudes"라는 작품. 1940년 리오데자네이로에서 쓴 "5 Preludes"로써 이 작품들은 연주자에게 최고수준의 기교적 능력을 요구하고 있다. 현대의 다른 작곡가에 비하여 기타의 성능을 독특하게 살려서 연주자와 청취자 양편에서 모두 풍부한 음악적 아름다움을 마련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와 친교가 깊은 탁월한 연주가 세고비아는 연습곡집을 스카를랏티쇼팽의 그것과 비교하면서 양손의 연주기법을 발전시키기 위해 정말 중요하고 더불어 연주곡으로서도 지속적인 심미적 가치가 있다는 것을 언급하면서 보내온 빌라-로보스의 기타를 위한 협주곡의 초연에도 힘썼다고 한다.


그의 작품은 폰세의 여성적 작품에 대조되는 남성적작풍을 보여주고 있다. 항상 굵은 선과 가냘픈 두개의 선이 조직되어서 열정감미로움을 주는 그의 곡상은 엄밀한 규칙이라기 보다는 즉홍적인 남미의 리듬과 함께 그의 작품의 특징으로 이루고 있다. 또한 2 개의 조성으로 한 개의 작품이 짜여지거나 남성적인 면과 여성적인 면을 교차시키는 3부 형식과 같은 곡을 보여주고 있다. 전주곡 다섯개는 개개의 특성이 뚜렷한 곡이고 그 표현하는 기법이 다양해서 그 어떤 기타곡과는 전혀 다른 인상을 받게 되는 곡이라 할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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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가니니

Nicolo Paganini

(1782 ~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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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tar 429 2006. 2. 8. 10:40

스칼라띠

Giuseppi Domenico Scarlatti

(1685 ~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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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tar 429 2006. 1. 30. 12:46

마뉴엘 폰세

Manuel Maria Ponce

(1885~1948)

[폰세]는 근대 멕시코의 대표적인 음악가입니다. 멕시코 시립음악학교에서 수학하고, 1903 년독일이탈리아에서 유학하였습니다. 멕시코 국민음악학원 교수겸 피아니스트, 그리고 멕시코 교향악단의 지휘자로 활약하였으며, 40세에 파리의 듀카를 사사한 정열가이기도 합니다.

세고비아로부터 "기타의 바하"라는 찬사를 들은바 있으며, 만년에는 멕시코 국립음악의 수립에 노력하였습니다. 1940년에 세고비아를 위하여 작곡한 "남(南)의 협주곡"을 비롯하여, "3개의 소나타", "3개의 멕시코 민요", "12개의 전주곡", "스페인 홀리아의 주제에 의한 32개의 변주와 푸가"등이 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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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tar 429 2006. 1. 15. 18:10

비발디의 기타협주곡



Antonio Vivaldi

(1678~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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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onio Lauro (1917. 8. 3~ 1986. 4. 18)






베네주엘라의 Ciudad Bolivar에서 태어나고Caracas에서 서거한[안토니오 라우로]는 20세기 남미 최 정상의 작곡가들 중 하나였습니다.

이발사였던 아버지는 노래와 guitar 연주를 즐겼는데, 안토니오가 5 살 때 돌아가셨고, 그 해에 온가족이 카라카스로 이사하였습니다. 안토니오는 "Academia de Musica y Declamacion"에서 피아노작곡 등 전통적인 음악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거기 스승들 중에는 저명한 작곡가 Vicente Emilio Sojo (1887-1974)도 있었습니다. 1932년, 파라과이의 전설적인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인 Agustin Barrios의 연주회가 카라카스에서 열렸는데, 이미 민속 기타리스트로 행세하고 있던 젊은 안토니오는 그 연주를 듣고 크게 감명을 받아, 피아노나 바이얼린을 다 그만두고 guitar에만 전념키로 결심하였습니다. 1933년부터는 Raul Borges (1888-1967) 밑에서 공부했는데, 라우로는 그에게서 전통적인 클래식기타 레퍼터리를 소개 받았습니다. 그 후 10년간은 Rodrigo Riera, Jose Rafael Cisneros, Alirio Diaz 등도 Borges의 제자가 되었고,그 중Alirio Diaz는 훗날 라우로의 작품들을세계 청중들에게 선보여 깜짝 놀라게 하고, Andres SegoviaJohn Williams에게 참신하고도 생소한 안토뇨 라우로의 작품들을 소개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의 많은 남미인들과 마찬가지로 라우로도 열렬한 문화적 민족주의자였으며, 자기 나라의 음악적 자산을 보호하고 세상에 알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1935~1943년 사이에는 "Trio Cantores del Tropico"의 단원으로 (베이스 파트 노래도하고 guitar와 cuatro를 연주하면서) 이웃 나라들을 여행하며 베네주엘라 음악을 소개하였습니다. 라우로는 그 앞 세기에 Ramon Delgado Palacios (1867-1902) 등 명망있는 국가적 작곡가들이 창작한 가지각색의 식민지풍 실내악 왈츠들에 특히 매료되었습니다. 선명한 선율, 교차하는 그리움, 화려하면서도 뚜렷한 싱코페이션 (3/4박자 마디 2개를 3/2박자 마디 한 개로 바꾸는 헤미올라 기법)으로 특징지어지는 그런 음악들은예외 없이그의 민속학적예술 활동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유럽에서 스메타나그라나도스 같은 사람들이 조국의 민속 선율들을 민족예술로 승화시킨 것에 비견될만 합니다.]

베네주엘라의 걸출한 피아니스트 Evencio Castellanos (1914-1984)의 연주회가 그런 왈츠들로만 편성된것을 보고,라우로는 guitar도 역시 그런 곡들을 레퍼터리로 하는 게 좋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장르에서의 초창기(1938~40) 노력들이 훗날 Tatiana, Andreina, Natalia 등의 명곡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그에게는 기타곡들 말고도, 관현악, 합창, 피아노, 독창곡 등의 작품들이 수십 개 있으나 대부분 출판되진 않았습니다. 그는 가끔 현대 작곡기법을 시험해보기도 하였으나, 그의 기타 작품 대부분은 본질적으로 "정통파"입니다. [즉, 현대적 변형화음들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1951~52년 사이에 Marcos Perez Jimenez 장군의 군사임시정부는 민주주의 신념을 이유로 라우로를 투옥하였습니다. 나중 그는 친구들에게, 감옥이란 그 세대의 베네주엘라 남자에겐 정상적 생활의 한 부분이라고 말하면서, 그 경험을 가볍게 떨쳐버렸습니다. 그는 옥중에서도 작곡을 계속하여, 출옥 즉시 새로 결성된 개척적인 프로 클래식기타 3중주단 “Trio Raul Borges”에 합류하였고,그로부터 몇 십 년간 라우로의 작품들이 전 세계에서 출판되고, 녹음되고, 연주되면서, 어디서나 그의조국 음악에 대한공헌이 알려지고 칭송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Juan Jose Landaeta Conservatory 등 저명한 음악학교들의 초빙교수를 역임하였고 베네주엘라 교향악단의 단장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연주가라기보다는 작곡가라고 겸손한 주장을 하였지만, 친지들은 그를 설득하여 순회 독주회에 나서게 했는데, 베네주엘라에서 시작하여 1980년 런던 Wigmore Hall에서의 성공적 공연으로 연주 생활의 정점에 도달하였습니다. 1986 년,서거 직전 조국 최고의 예술상인"Premio Nacional de Musica"를 수상하였습니다.

다음은 그의 유명한 작품 몇 개를 살펴보겠습니다.

Seis por derecho: Joropo, subtitled al estilo del arpa venezolana = 활기 넘치는 시골 댄스곡의 성곡적 버전입니다. vals venezolano처럼, joropo는 hemiola를 광범위하게 사용합니다. 여기서는 6/8박자와 3/4박자가 교대로 나오죠. 이 곡의 제목은 베네주엘라의 대평원 주민들에게서 따왔습니다. 그들 특유의 집요한 리듬 (6/8 = seis)을 사용토록 허용하여 그런 제목을 붙일 권한을 준 겁니다. 그 뒤에 녹음된 4 곡은 베네주엘라 고전 왈츠들인데, Maria Carolina는 1983년에야 출판되었고, 원 제목은 Iliana였으나 작곡자가 조카딸 이름을 따서 고친 겁니다. El Marabino (보통은 "Maracucho")는 그가 한 때 살았던 중요 도시 Maracaibo의 원주민을 뜻합니다. 라우로는 제자 Luis Zea에게, "새 작품을 쓰고 그것에아내 이름을 따서 Maria Luisa라고 제목을 붙였는데 진짜 그녀만큼 까다로운 곡이야" 하고 말한 적이 있다는데, 훗날 라우로 부인이 그 말을 듣고 박장대소하였다고 합니다. 실은 매우 로맨틱한 곡입니다. 그 곡의 제2부는 쇼팽의 Ab 장조 왈츠 op.69 no.1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Angostura는 그가 출생한 Ciudad Bolivar 시의 옛 이름입니다.

라우로는 옥고를 치르는 동안 인상적인 Suite Venezolana를 작곡하였습니다. [Registro (Prelude), Danza Negra, Cancion,Vals로 구성됨]희한하게 명명한 첫 악장 Registro는 일종의 즉흥연주라는 뜻으로, 연주자가 손을 풀거나 새 악기나 손에 익지 않은 악기를 시험해 볼 수 있게 되어 있어서, 원래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에서 사용된 ricercare와 대등한 성격입니다. 라우로는 그의 Suite para piano 첫 악장에도 동일한 이름을 붙였습니다. Danza negra는 화려하고도 매우 어려운 곡입니다. 국제 가타 콩쿠르에서 주요 지정곡이나 최후 도전곡으로 자주 채택되곤 하지요. 성숙한 기교 뿐 아니라 난삽한 베네주엘라 리듬에 대한 견실한 구사력을 요구합니다. 그것은 주로 San Pedro라는 베네주엘라 민속음악에서 따온 아프리카 풍의 베네주엘라 춤곡입니다. 마지막의 2 개 악장 a typical cancion de serenataa vals에서는 다른 인기곡 La Tumba를 차용하였습니다. 1971년에는 왈츠곡 El nino를 써서 장남 Leonardo에게 헌정하였습니다.

4 Valses Venezolanos의 첫 3 곡은 1938-40년 사이 Trio Cantores del Tropico와 함께 에콰도르를 여행하던 중에 작곡하였는데, 몇 년 후 출판하고 나서야 그는 각각 조카딸 Tatiana, 누이 Andreina, 딸 Natalia의 이름을 붙이기로 하였습니다. 마지막 곡은 단연코 라우로 최고의 곡인데, Vals criollo (Segovia녹음시), 또는 Vals No.3 (1963년 출판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네 번째 왈츠 Yacambu는 호기심 많은 반음계주의와 뜻밖의 화음들이 곁들여진 론도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서부 베네주엘라의 그림 같은 풍경을 자랑하는산악지대를위하여 이름을 붙였습니다.

El Negrito (막내 아들 Luis Augusto를 뜻함)과 La Gatica (아내의 별명, 고양이를 뜻함)은 1984년에 출판 되었는데, 한 쌍의 남녀가 연주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라우로의 Triptico는 3 개의 E단조 곡으로 구성된 것인데, Andres Segovia의 요청에 따라 하나로 모은 겁니다. 그 첫 곡 Armida는 누이의 이름을 딴 명상적 노래입니다. Madrugada (동트기 전)은 Sojo의 몇 안 되는 기타 작품 중 하나에서 영감을 얻은 앞꾸밈음 공부 용인데, 존경했던 대가 스승의 타계 직후인 1974년에 작곡하였습니다. La Negra는 조카딸 Armida의 별명이었는데 - 그 엄마인 라우로의 누이도 이름이 같았음 - 이 왈츠 소품은 1976년 8월에 작곡하였습니다.

Variaciones Sobre Una Cancion Infantil [venezolana]는 "19세기 기타리스트들에 대한 경의"를 담고 있습니다, 즉, "주제와 변주" 형식을 사랑했던 Sor, Giuliani, Carcassi 등등을 위해서 쓴 곡입니다. 선율의 전반부는 어린이 노래 Palomita Sentada이고 후반부는 라우로 작곡입니다. 그는 그 소곡이 너무 짤막하여 성곡적으로 전개시키기 어려웠다고 술회하였습니다. Carora는 기타의 대가 Alirio Diaz가 즐겨 연주하는 왈츠가 되었습니다. 라우로가 그에게 제목을 붙여달라고 청하자, 디아즈는 서부 베네주엘라의 Lara 주에 있는 도시인 자기 고향 (친구 Rodrigo Riera의 고향이기도 함) 이름을 붙였습니다.

라우로의 작품들은 전 세계적으로 기타리스트들에게 오래 인기를 누려오고 있지만,자신의 녹음은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John WilliamsDavid Russell의 녹음이 몇 개 있어서 - 이 두 거장이 이미 Agustin Barrios Mangore를 위해서도 그랬듯이 -라우로를그 명성에 걸맞는 명예의 전당에 모신 셈이 되었습니다. John Williams는 안토니오 라우로를 "Strauss of the guitar"라고 칭송함이 마땅하다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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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rios-Mangore

♩Guitar 429 2006. 1. 1. 11:10

Agustin Pio Barrios-Mangore (1888. 5. 5 ~ 1944. 8. 7)



[아구스틴 바리오스]는 남미 파라과이 출신의 음악가, 시인, 신학자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파라과이의 San Juan Bautista de las Misiones라는 소도시의 음악과 문학을 소중히 여기는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음악를 사랑하였답니다. 10 대가 되기 전부터 악기들을 - 특히 guitar를 - 좋아하여, 13 세가 되던 1901 년에는 천재로 인정 받아 "Colegio Nacional de Asuncion"에 음악 장학생으로 입학하여 파라과이 역사상 최연소 대학생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대학 시절의 그는 음악 뿐 아니라 수학, 저널리즘, 문학 등 분야에서도 매우 뛰어났다고 합니다.

그는 모국어인 스페인어 말고도 원주민의 Guarani어를 잘 했고, 영어, 불어, 독어 등도 잘해독할 줄 알았습니다. 음악적으로, 그는 실로 비범한 즉흥 연주가였고,환상적인 창작능력을 발휘하여 300 개가 넘는 곡을 만들어 거기에 를 붙이고, guitar로 연주하는 일에 일생을 바쳤습니다. 그는 "문화에 흠뻑 젖어들지 않고서는 훌륭한 기타리스트가 될 수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1993 년 윌리엄즈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 기타 음악의 연주가나 작곡가로서, 바리오스는 시대를 초월하여 단연 최고다. 그의 음악은 구성 면에서나, 시적인 면에서나, 그 밖의 어떤 면에서나 모두"한 수 위"이다! 시대에 구애 받지도 않는다... 그러기에 내 생각엔 그가 소르, 줄리아니, 빌라-로보스 등등보다도 더 중요한 작곡가이다."

바리오스는 바하를 열심으로 연구하였지만, 시종 민족성의 토대 위에 그의 음악을 승화시켰습니다. 그의 음악에 있어서 중요한 공적은 아메리카 대륙의 민족학교 Esucela Mangoreana를 창설하여, 스페인 기타계의 움직임과는 구별되는 남미민족색이 넘쳐 흐르는 곡들의 예술적 가치를 높인 것을들 수 있습니다. 그의 음악은 남미나 미국의 여러 소스들로부터 복사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는 여러 차례 대륙을 누비는 여행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사귀었고, 자신의 곡들을 수시로 수정해가며시가 곁들여진자필 악보서명하여 친지들에게 선물주어 버리는 일이 흔히 있었으므로, 오늘날 어떤 곡들은 여러가지 버전이 존재합니다. 그러니까 그의 작품에서 어떤 부분의 음표나 아르페지오, 하모닉스 등이 서로 다르게표현된 악보들을 보더라도 그리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Mangore"라고 하는 이름은 파라과이의 삼림 속에 살고 있는 원주민추장의 이름을 따서붙인것으로, Nitsuga Mangore - Nitsuga를 거꾸로 읽으면 Agustin이 됨 - 라고 하였습니다.

기타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형용하기 어려우리만큼 귀중한 유산을 남긴 바리오스는 1944. 8월 7일 엘살바도르에서 심장병으로 사망하였습니다. 그에게는 열렬한 팬들이 많아, 적어도 파라과이에서는 모든 시대를 망라하여 가장 위대한 음악가로변합없이 존경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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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roba

♩Guitar 429 2005. 12. 30. 12:23

Federico Moreno Torroba (1891 ~1982)



부친은 유명한 오르간 연주자로, 그의 지도하에 음악생활을 시작한 [페데리코 모레노 토로바]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태어나 마드리드 왕립 콘세르바토리오에서 수학했습니다. 알베니스, 그라나도스, 팔랴, 튜리나 등 스페인의 많은 작곡가들이 프랑스에 유학하여 대성하였으나 토로바만은 젊은 시절 프랑스에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그를 흔히 전통적 스페인 음악 형식인 "zarzuela"와 연관시킵니다. 몇 개의 오페라 악단을 지휘하면서, 그는 zarzuela를 국제 무대에 소개하는 데에 공헌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타 작곡가로서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자신의 지휘 임무를 수행하면서, 그는 많은 작품을 썼습니다. 전통적 스페인 형식과 기타 연주홀 양 쪽 다를위하여 말입니다. 그는 1930 년대에 Luisa Fernanda (1932) 및 La Chulapona (1934)라는 zarzuela로 최고의 성과를 올렸습니다. 또 오페라도 몇 개 작곡했는데, La Virgen de Mayo (1925) 와 El Poeta (1980, Placido Domingo 주연)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기타를 갖고 있었으나, 1920 년에 처음 세고비아의 연주를 듣고 세고비아를 위하여 곡을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세고비아 자신도 토로바가 자기를 도와 레퍼터리를 넓혀준 최초의 작곡가였다고 술회하고 있습니다. 토로바의 곡에는 Sonata, Concerto와 같은 형식악도 있으나, 그와 같은 어려운 곡보다는 스페인 무곡민요를 주제로 한 것 중에 보다 좋은 작품들이 있습니다. 그는 맹인 작곡가 로드리고와 함께 만든 2막 오페레타 [푸른 악마(Elduend Azul)]도 남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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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tar 429 2005. 12. 26. 15:36



Johann Sebastian Bach

(1685 ~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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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del

♩Guitar 429 2005. 12. 14. 14:01

핸델




George Friderich Handel

(1685~ 1759)

핸델이 직접 기타나 류트를 위한 곡을 쓴 것은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건반악기 조곡들을 비롯한 그의 많은 작품들이 기타로 편곡, 연주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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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ccherini

♩Guitar 429 2005. 12. 13. 16:15

루이지 보케리니

Luigi Rodolpho Boccherini (1743 ~1805)

스페인 민속음악은 확실히 어느 정도는 보케리니에게 영향을 끼쳤다. 왕실기타리스트인 파드레 바실리오스카를랏티팬댕고(3박자의 스페인 무곡)를 멋지게 즉흥 연주하는 것을 듣고서 감동한 보케리니는 1788 년에 쓴 '두개의 첼로를 위한 5중주 작품 50의 2'의 첫악장 그라베에 팬댕고를 기타하프시고드를 위한 것으로 편곡하였다. 1799 년에 보케리니는 많은 그의 피아노 5중주곡을 기타 5중주곡으로 직접 편곡하였다. 이들 중 6곡은 아직도 출판되지 않고 있다. 현악 5중주 E단조는 유쾌하기도 하고 심오하기도 한 작품으로써 현악 4중주의 개척자의 한사람으로 그의 명성을 충분히 뒷받침하는 작품이다.

<아래는 정상수 님 자료('94.10.22)에서 발췌, 손질한 "보케리니 해설"입니다. >

18 세기 말, 르네상스시대의 종말과 함께 재능있는 아마추어 귀족음악가들이 활동하는 시대가 시작된다. 전문가들에 의한 연주회는 사라져갔으며, 때문에 초기 실내악은 비교적 단순한 형태를 띠고 있다. 루이지 보케리니는 이러한 과도기에 귀족들의 야유회를 위해 4중주곡과 5중주곡을 쓰느라고 그의 작품생활의 대부분을 헌신한 첫 희생자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이태리의 루카에서 태어난 보케리니는 이미 10대에 첼리스트로써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바이올리니스트인 그의 친구 필립포 만프레디와 프랑스 순회공연중, 보케리니는 마드리드로 갔는데 거기서 스페인 대사로부터 왕실의 후원을 받을 것을 권고받았다. 그러나 후원은 쉽게 얻을 수 없었고, 스페인에서의 1 년 후에야 이루어졌으며 보케리니가 작곡에 전념할 수 있도록 많은 작품들이 의뢰 되었지만, 그 때까지는 이렇다 할 직업이 없었다. 그러나 마침내 그의 작품에 깊은 감명을 받은 돈 루이스(Don Luis)왕자의 관심을 끌어, 그의 실내악단의 첼리스트겸 작곡가로 임명받았다.


보케리니는 그의 여생을 스페인에서 보냈다. 1769 년에서 1785 년까지 15 년 동안 그는 돈 루이스의 후원을 받았다. 그러나 돈 루이스가 죽자 보케리니는 마드리드로 돌아가 오스나공작 부처의 살롱을 위한 음악 지휘자가 되었다. 그의 실내음악들은 스페인 귀족사회에서는 연주되어지지 않았지만, 독일오스트리아에서 대단한 명성을 얻었다. 하이든의 작품들을 출판했던 출판업자 비에니즈사에 의해 그의 작품이 보급되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프러시아의 프에드릭 빌헬름 2 는 보케리니에게 호감을 갖게 되었고, 1786 년에는 보케리니를 그의 실내악단 지휘자로 임명하였다. 그의 작품중에서도 가장 원숙하고 뛰어난 그의 말년의 작품을 포함해서 현이나 피아노와 현을 위한 4중주곡과 5중주곡들의 대부분이 프러시아왕을 위해 작곡되었다.


보케리니는 그를 받아준 스페인에서는 크게 인정받지 못 했지만, 유럽에서는 상당히 큰 명성을 얻었다. 1790 년 한 독일사전에는 "위대한 이태리 기악 작곡가의 한사람...그와 견줄만한 사람은 하이든 이외에는 아무도 없다."고 쓰고 있다. 보케리니와 마찬가지로 하이든(1732-1809)은 그의 실내악 작품으로 해서 재능있는 아마츄어들의 추앙을 받았다. 젊고 노력하는 음악가로써, 또 소나타와 3중주, 4중주 곡들을 작곡하여 그의 명성은 높아갔다. 그의 자서전에 의하면 그는 성 스테판 성가대에서 17 세에서 24 세까지 8 년간을 있으면서 비참한 생활을 근근히 이어갔다.


보케리니는 1789 년 12월 27일에 출판업자인 프레엘에게 보낸 편지에서 여섯곡의 기타를 위한 5중주를 완성하였다고 적고 있다. 이 여섯곡의 기타 5중주는 기타리스트인 베나벤테(Marquis Benavente)에게 헌정되었다. 이 곡들은 자신의 초기 작품을 각색한 것으로, 예를 들면 처음의 두곡은 작품 57의 피아노 5중주를 개작한것이다. 만약 이 작품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이 이 음악을 듣는다면 이 곡이 애초부터 기타를 위한 곡인가에 대해서 깊은 의혹을 품을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이곡을 통해서 보케리니가 기타에 뛰어난 솜씨를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그 당시에 개작한 여러 작품중에서 현재는 두곡만이 남아 있는데, 그 중 제 7 번 E단조(Gerard No.451)는 보케리니가 1797년 경에 작곡한 피아노 5중주 작품 56-1을 개작한것이다. 이 곡은 다른 곡처럼 진보적인 양식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세련되고 독립된 아다지오 악장의 양식면에서 고전적이라기 보다는 로코코 양식에 가깝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3악장 미뉴에토의 특징은 현저한 변화와 사운드의 자연스러움에 있다. 그리고,마지막, 알레그레토 악장에서는 놀랍게도 로코코 유형의 세련됨과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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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drigo

♩Guitar 429 2005. 12. 6. 11:31

Joaquin Vidre Rodrigo (1901. 11. 22~1999. 7. 6)

[호아킨 로드리고]는 스페인의 작곡가이자 거장 피아니스트였습니다.

Sagunto에서 태어난 로드리고는 어려서 디프테리아에 걸려세 살에 장님이 되었습니다. 그는 처음 Valencia에서는 Francisco Antich를, 파리에서는 Paul Dukas를 사사하였습니다. 잠시 스페인에 돌아왔다가 다시 파리에 가서는 Maurice EmmanuelAndre Pirro를 차례로 스승으로 모시며 음악학(musicology)을 공부하였습니다.

1925년에는 작품 "Cinco Piezas Infantiles"로 스페인의 오케스트라 대상을 수상하였습니다. 그는 1933. 1월, 발렌시아에서 유태인 혈통의 터키인 피아니스트 Victoria Kamhi결혼하여, 1941. 1월, 딸 Cecilia를 낳았습니다.

로드리고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1939년 파리에서 작곡한 "Concierto de Aranjuez"로, 독주 기타와 오케스트라의 협주곡입니다. 중간의 아다지오 악장은 20세기 클래식 음악에서 가장 잘 알려진 곡들 중 하나이며, 기타잉글리시 호른이 주 선율을 교차 연주합니다.

이 곡의 성공으로, 플루티스트 James Galway, 첼리스트 Julian Lloyd Webber 등을 포함하는 많은 걸출한 독주가들의 청탁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의 "Concierto Andaluz"는 4 대의 기타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곡인데, Celedonio Romero가 자신과 세 아들을 위하여 청탁한 것입니다.

1947년부터 그는 Complutense University of Madrid에서 철학과 문학의 교수단에서 영예의 'Manuel de Falla'라는 직위로 , 음악사 교수를 역임하였습니다.

1991년, 국왕 Juan Carlos는 로드리고에게 "Marques de los jardines de Aranjuez"라는 귀족 작위를 수여하였습니다. 1996년에는 저명한 "Prince of Asturias"를 수상하였습니다. (스페인에서는 노벨상에 준하는 상이랍니다.) 1998년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L'Ordre des Arts et des Lettres의 "Commendateur"라는 칭호를 받았습니다. (예술과 문학의 천사 계급?)

호아킨 로드리고는 1999마드리드에서 서거하였습니다. 그와 부인 Victoria는 아랑훼즈 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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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 정상수 님 자료('94.10.22)에서 발췌, 손질한 "로드리고 해설"을 덧붙입니다. >
기타아를 위한 "아랑훼스 협주곡 (Concierto de Aranjuez)"를 내놓아 세계에 이름을 떨친호아킨 로드리고는 1902 년 바렌시아 근처인 사훈토에서 태어난 스페인 음악가이다. 3 살 적 장님이 된 그는, 어려서부터 바렌시아 음악원의 후란시스코 안티오크에게 작곡법을 배웠다. 1920 년부터 1923 년까지 유럽 여러나라를 여행한 직후 작곡한 그의 첫 데뷰곡인 교향적 스케치<홍굴라레스>는 1924 년 바렌시아 교향악단이 초연해 호평을 받았다.

1927 년 파리로 간 로드리고는, 뒤카에게 작곡법을 배우고, 화야(Falla : 팔랴)와 친해졌으며, 음악의 필수 동반자인 터키 피아니스트 캄히를 부인으로 맞아들였다. 그후 모리스 엠마뉴엘앙드레 삐로에게 음악학을 계속 공부한 뒤, 1939 년 스페인으로 돌아와 <아랑훼스 협주곡>을 작곡, 사인스 델 라 마사에게 헌정.초연해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켰다.로드리고의 기타아 협주곡들은 현대 세계에서 최고 정상급으로 꼽히고 있는데, 그 까닭은 음량이 적은 기타아일지라도 특성을 잃지 않고 오케스트라아와 멋진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그의 작곡기법은 스페인 특유의 리듬과 민요와 카덴짜를 바탕으로 하지만, 프랑스 인상주의에 기우는 형틀과 신고전적인 화성과 가락, 그리고 현대 불협화음을 사용함으로써 18 세기 이래 스페인 국민음악과 선배들의 매너리즘에서 벗어나 국제성을띠어 풍성한 음악으로 빛을 발하였다. 1954 년에 작곡된 "귀하신 분을 위한 환타지아 (Fantasia para un Gentilhombre)"는 세고비아에게 헌정.연주된 곡이지만, 17 세기 선배 대가 가스파르 산스를 위해 쓴 작품으로도 보고 있다.

로드리고는 기타아를 연주할 줄은 몰랐지만, 이 악기의 독특한 작곡기법으로 <즐거운 소나타>와<스페인 소나타>등을 작곡했고, 매우 포플러한 <토니딜라와 환댕고> 2중주곡과 노래와 함께 연주하는 <휠리아스>.<카나리아스>.<3개의 스페인 노래>등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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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la & Turina

♩Guitar 429 2005. 12. 1. 13:43

Falla Turina


Manuel de Falla

(1876~1946)



Jonquin Turina

(1882~1948)

[마누엘 드 팔랴 (또는 화야)]스페인카디스에서 출생하고, 아르헨티나에서 사망한 작곡가로,처음엔 어머니로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마드리드에서 페드렐에게 작곡을, 트라고에게 피아노를 배웠습니다.
20 세기 스페인 음악을 대표하는 스페인 최대의 작곡가인 그는 1910 년대의 사랑은 마술사, 삼각모자 등으로 각광 받기 시작하였으며 인상주의적인 수법으로 스페인 정원의 을 써서 크게 성공했고 인상파로 부터 신고전주의로 방향을 바꿨던 그는 스페인 국민주의의 원조인 페드렐을 사사하며 스페인 음악을 부흥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을 불러 일으켜 스페인 민족음악을 그대로 소재로 삼지않고 그것을 소화시켜 분위기를 더 높게 승화시켰던 세계적인 작곡가이며 피아노 연주자로서도 이름이 있던 인물입니다.
중요한 작품으로는 오페라 "무상한 인생", 발레 음악인 "삼각 모자", "사랑의 마술사" 등이 있고, 기타의 작품으로는 "드빗시"의 죽음에 바치는 "오메나헤"가 있습니다.

[호아킨 튜리나] 멕시코에서 출생한 스페인의 피아니스트, 작곡가 겸 지휘자로, 마드리드 음악원에서 수학하고, 1905 년 파리에서 단디를 사사하였습니다.

팔랴, 알베니스 등과 더블어 스페인 민족주의 음악에 공헌 했으며, 인상파 수법에 의한 현대적 작품을 많이 썼습니다. 1912 년에 발표된 교향시 "로시오제의 행진"을 비롯하여 "판당길로", "소나티네", "타레가 찬가", "세빌리아나" 등 빼어난 작품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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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uliani

♩Guitar 429 2005. 11. 24. 12:23

이탈리아 고전파, 줄리아니


Mauro Jiuliani (1780~ 1840)

<아래는 정상수 님 자료('94.10.22)에서 문맥/문법을 약간 손질한 "줄리아니 해설"입니다. >

고전파 음악의 또 다른 대표적인 음악가로는 이탈리아 출신의 마우로 쥴리아니(Maro Giuliani 1781-1828)가 있는데, 그는 바이얼린의 N. Paganini(1782 - 1840), 피아노 연주의 F. Liszt(1811 - 1886)에 필적하는 명성을 지닌 기타 연주의 대가였으며 F. Sor와는 3살의 차이가 있었지만 런던 음악계에서는 동시대의 라이벌이었다. 그는 1781년 보로니아에서 출생하여 1829년에 작고한 이탈리아의 기타리스트로서 스페인의 소르와 더불어 당시 가장 위대한 연주가 였다. 어려서부터 바이올린, 플루트, 기타아 등을 공부 하였으며, 20살때에 이탈리아 제일의 기타리스트로 군림하였다.


그가 기타연주가의 대가로서 유럽전역에 걸친 연주여행을 처음 갖게된 것은 1800년경이었고 1807년에는 비엔나에 정주하였다. 비엔나에서 그는 슈베르트, 베토벤, 웨버, 훔멜과 같은 당대의 대작곡가들과 사귈 수 있었다.


안톤 디아벨리와는 특별한 친분을 가지고 함께 연주 여행을 다니기도 하였다. 베토벤은 자기작품 몇가지를 쥴리아니를 위해 편곡하여 1813년 베토벤의 교향곡 제7번 초연(初演)시 바이얼린이나 플륫 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악기로 반주되었는지 확실치 않으나 그곡들은 확실히 발표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823년 런던으로 건너가 연주했는데 거기서 그는 매우 유명해져서 런던에서 새로 발간된 한 기타연주 관계지는 그의 이름을 따라 [쥴리아니아드(Guilianiad)]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였다.


현재 아마 가장 많이 알려진 쥴리아니의 연주용 작품이라면 기타와 현악을 위한 협주곡 A장조 Op.30으로 이곡은 그가 작곡한 네개의 협주곡 중의 하나이다. Op.15"화려한 소나타" Op.71"3개의 소나티네" Op.69.70"가타아 콘체르트" 등의 걸작을 비롯하여 플루트, 바이올린의 작품, 그리고 기타아와 피아노를 위한 작품등 300여 이 있다. 그는 수백곡의 피아노 작품을 작곡했지만 거의다 없어지고 현재는 디아베리 왈츠를 주제로한 베토벤의 <33개의 변주곡 작품번호 120>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작품 특성은 고전파의 정통적인 형식에 비엔나풍이 더해진 매우 맑고 유연성을 지니고 있다.


소르는 주로 파리와 런던에서 인기를 얻었는데, 반하여, 쥴리아니는 1806년에서 1819년까지 비연주회 평과 다른 음악가들 간의 교우 관계와 그의 생애에 대하여 광범위하고 흥미롭게 연구하여 학위를 받았다. 그 논문 제목은 "클래식 기타의 탄생과 마우로 쥴리아니의 생애와 그의 작품에 나타난 당시 비인의 기타계"이다. 쥴리아니는 소르보다 더욱 많은 작품을 작곡하였는데, 소르의 작품 번호가 70번에 이르고 있는 데 반하여 출판된 쥴리아니의 작품은 151번에 이르고 있다. 쥴리아니의 성격은 다소 낙천적이었다고 생각되며, 그는 소르와 마찬가지로 가난 속에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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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르 맛보기



Fernando Sor (1778. 2. 14 세례 ~ 1839. 7. 10)

일수거인에게 존경하는 guitar음악가를하나만 들라면,

단연코 소르를 꼽을 겁니다. 그의 음악은 깊이와 격조에서,

미상불베토벤을 연상케 합니다.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난 [페르난도 소르]는 기타리스트작곡가로, 스페인에서는 '기타의 베토벤'으로 칭송받고 있습니다.

대대로 군인 가문을 이어온 상당히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소르는 당초 가문의 전통을 이어가기로 하였으나, 아버지가 그를 이탈리아 오페라에 데리고 다니면서부터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그는 음악과의 사랑에 빠져 군인이 되기를 포기한 것입니다. 오페라 말고도 부친은 그에게 guitar를 접할 기회도 주었는데, 당시는 기타라는 악기가 관현악단용 악기들에 비하여 열등하다고 여겨져 기껏 선술집 같은 데서나 사용되는 게 고작이던 시절이었습니다.

소르가 바르셀로나 근교 산악 Montserrat의 한 수도원에서 음악을 공부하던 중 부친이 돌아가시자, 어머니는 그의 공부를 계속 시킬 재정을 감당할 수 없어 그를 집에 데려왔습니다. 그가 초기기타곡들을 쓰기 시작한 곳이 바로 그 수도원이었습니다.

1808년, Napoleon Bonaparte가 스페인을 침공하였을 때는 민족주의적 기타음악을 작곡하기 시작했는데, 흔히 애국적인 가사를 붙이기도 하였습니다. 스페인 군대가 패배한 후, 소르는 점령군 정부에서 사무직에 종사한 적이 있습니다. 1813년 스페인이 프랑스 군대를 몰아낸 후, 프랑스인들과 잘 지냈던 소르를 비롯하여 다수의예술가들이 보복을 두려워한 나머지 스페인을 떠났습니다. 그는 파리로 가서 다시는 스페인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작곡 기법과 기타 연주 솜씨로 파리 예술계에서 인정을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결국 유럽 각처를 순회하며 많은 명성을 떨쳤습니다. 1827년, 나이와 건강을 핑계로 여생을 파리에 정착하여 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가 전보다 좋은 작품들을 많이 작곡한 것은 바로 이 은퇴 시기였습니다.

그의 마지막 작품은 1837년에 세상을 떠난 딸을 위한 미사곡이었습니다. 그 딸의 죽음은 이미 병들어 있던 소르에게 심각한 우울증세까지 겹치게 하여, 그는 1839년 불우하게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역사가 소르의 스타일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는 William Newman의 논평에 잘 요약되어 있습니다: "소르의 기타 소나타들의 창작적 가치는 매우 높다. 그 악기로부터 생겨나고 자라났으되 그 악기로부터 독립하여 우뚝 선 아이디어들은 신선하고 독특하다. 전개부에서는 대담하고도 풍부한 변조를 동반하면서 화음들이 교묘하고 놀랍게 변화한다. 전체적 기조을 이루는 선율이 고음에서 저음과 중간음 부분으로 이동하고, 자주 대위법적 편린들이 추가되면서 매우 자연스럽게 듣는 이의 흥취를 돋운다. 전개된 형식들 중에서는 첫 알레그로 악장들이 '소나타 형식'을 엄격히 적용하지만, 많은 아이디어들이 새로 도입되고 뒤에서 재현되기를 반복하는 가운데 여전히 상당한 유연성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는 하이든과 보케리니의 스타일로 되돌아가는 느낌이다. 특히 고전 교향곡들에서 발견되는 신택스와 반주부의 모든 정연함을 갖추고 있는 작품22 "Grand Sonata"의 제1악장에서 특히 그런 점이 두드러지며, 하이든의 미뉴엣과 론도처럼 멋진 진행을 보여주는 제3악장과 제4악장에서도 역시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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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 정상수 님 자료('94.10.22)에서 문맥/문법을 약간 손질한 "쏘르 해설"을 덧붙입니다. >
19 세기 초 고전파 음악의 대표적인 guitar 작곡가로는 카탈로니아 출신의 작곡가 겸 기타리스트였던 페르난도 소르를 들 수 있는데, 그의 작품은 그 시대의 다른 작곡가의 작품보다 오늘날 널리 연주되고 있다. 그는 본명이 호세 마카리오 페르난도 소르스 이 소르스(Jose Macario Fernanado Sors y Sors)이며 1778년 2월 14일 (1880년 2월 17일생이라는 설도 있음)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출생하였다. 소르는 18 세기 말에서 19 세기초까지 활약한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이며 이태리의 쥴리아니 (M.Giuliani)와 함께 고전파의 쌍벽을 이룬 존재였다.

5 세 때부터 작곡을 할만큼 신동으로 주위의 주목을 받을 만큼 천부적인 음악의 재질을 타고 났으나 그이 부친은 그가 군인이나 문관이 될 것을 기대했었다. 부친이 사망한 후 어머니의 동의를 얻어 소르는 카탈로니아의 몬토세라토 수도원 부속학교에서 바이얼린, 첼로, 화성학, 대위법 등을 공부하여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았다. 당시 유럽에서는 이태리 가극이 전성을 이루었고 오페라에 감명을 받은 소르는 최초로 [칼립소섬의 텔레마코]라는 오페라를 작곡하여 1797년 8월 25일 바르셀로나의 프린시플 극장에서 상영하여 호평을 받았다.

그는 20대 초반에, 고야의 후원자이기도 하였던 알바 공작부인의 가족으로 살았다. 그 뒤에는 당시 막강한 메디나셀리 공작의 후원을 받게되었으며 오페라, 교향곡, 오라트리오, 3개의 현악4중주, 여왕봉 찬가, 피아노 또는 기타반주의 스페인 가곡등 창작활동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편안했던 이같은 생활은 요셉 보나파르트가 스페인에서 괴뢰 정부를 세움으로써 끝나고 말았다. 소르는 그 당시 고야를 포함한 많은 스페인 지식인들과 함께 프랑스 해방 운동에 가담하였다. 그러나, 영국의 지원으로 스페인의 왕위가 부활되자 현명한 소르는 다른 동지들과 함께 스페인을 떠나 파리망명하여 예술가로서 일생을 바칠 것을 결심하였다.

그런데, 소르는 이 망명으로 인하여 국제적인 명성을 더하게 되었다. 파리에서는 그의 오페라 "신데렐라 Cendrillon"가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어, 1823 년에서 1830 년까지 무려 104 회나 공연되었다. 그의 기타 연주도 런던과 파리에서 계속 성공을 거두었으며, 그로 인하여 기타의 대중적인 인기가 다시 살아났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가 기타에 전념하게 된 것은 케루비니의 격려와 모렛티의 기타연주를 듣고 나서부터라고 하는데, 파리와 런던 등 유럽 각지를 돌면서 순회 연주회를 가져 절찬을 받았으며, 또한 기타 음악 교사와 발레음악 작곡가로서도 명성을 얻게 되었다.

1817 년 소르는 영국으로 건너가 마침 기타음악의 개화기였던 런던은 소르의 재능을 최대한 발휘하는 기타연주에 열광적으로 호응하였다. 또한 소르는 Op.1 "6 개의 위악곡"을 1819 년 출판하였으며 기타를 위한 작품활동은 물론 오페라 작곡과 상을 계속하여 호평을 받았다. 런던시대의 소르는 그의 생애를 통하여 가장 화려한 명성을 떨치는 시기였으나 경제적으로는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1823 년 파리에서 신작 발레 [신데렐라]를 상연한 후 당시 연주가들이 동경하던 러시아의 여행에서 7현 기타를 사용하던 그곳에서 6현기타의 묘기를 보여 절찬을 받았다. 페데르부르그 (레닌그라드)에서는 국왕 알렉산더 1세의 장례를 위한 장송 행진곡을 작곡하였으며 모스크바에서는 니콜라스 1세의 즉위축하를 위한 발레 [엘큐르와 옴파레]를 작곡 상연하였다.

그후 파리에서 런던, 다시 파리로 돌아와 많은 콘서트에서의 활약과 오페라의 작곡을 계속하여 그의 위대한 재능과 빛나는 업적을 남겼으며 만년에는 빈곤과 병고, 사랑하는 딸의 죽음 등으로 비참하고 불행한 생활끝에 1839년 7월 13일에 사망하였다.

소르는 '주제와 변주' 형태를 좋아해서 프랑스와 스코틀랜드의 수많은 노래를 주제로 변주곡들을 만들어냈는데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주제에 의한 변주곡도 그 유명한 예이다. <말브로우>변주곡에서 그는 고전적 전통에 의한 작법을 쓰면서 후기 고전주의와 초기 낭만주의 시대 작곡가들의 스타일을 혼용하고 있다.

소르가 영국에 거주하는 동안 쥴리아니와 예술적 대립, 즉 소르의 우아하면서도 밝은 대위법적 악풍과 쥴리아니의 호화스러우면서도 직선적인 악풍으로 청중들까지도 두 파트로 분리시켰다.

소르는 아구아도(D.Aguado 1784~1849 스페인)와 깊은 우정을 나누면서 한때는 수년간 동거도 하였으며 서로의 예술을 깊이 연구하였다. 아구아도의 손톱을 사용한 주법에 반하여 소르이 손톱 없이 하는 연주로 상반된 주법을 사용하였으며 서로 존경하며 우의를 두텁게 하였다고 전해진다. 당시 소르는 두사람을 위한 연주회용 2중주곡인 [L'encouragement]를 작곡하였으며 이곡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세계적 기타리스트들에 의하여 자주 연주되고 있는 명곡이다.

그의 많은 교육적인 작품은 기타의 연주 수준을 높이려는 의도에서 쓰여졌으며, 매우 흥미롭게 쓰여진 그의 교본은 스페인어와 프랑스어 그리고 영어로 번역되었다. 그는 교본에서 기타의 기술적인 면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으며, 손톱의 사용이 편하다고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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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레가 걸작선






Francisco Tarrega

( 1852. 11. 21 ~ 1909. 12. 15 )

작곡가이자 기타리스트였던 [프란치스코 타레가]는 스페인의 Villarreal에서 태어났습니다.

타레가는 유년기에 농사용 수로에 빠지는 사고를 당하면서 시력을 거의 잃고 말았습니다. 그 영향으로, 가족은 Castellon으로 이사하였고 그는 거기서 음악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를 처음 가르친 두 스승 Eugeni RuizManuel Gonzalez는 모두 맹인이었습니다. 1862년, 기타리스트 Julian Arcas는 신동 타레가의 연주를 듣고 당시 음악가들의 허브였던 Barcelona로 갈 것을 권유하였습니다. 그러나 거기 간지 얼마 안 되어 그의 부친이 그를 다시 데려와 버렸습니다.

1874년 Antonio Canesa라는 부유한 거상의 후원을 받아 Madrid Conservatory에 입학하여 Emilio Arrieta를 사사하며 작곡 공부를 하였습니다. 1870년대 말까지, 그는 제자 Emilio PujolMiguel Llobet를 길러내면서 정기적 콘서트를 열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거장다운 연주 솜씨로 "기타의 사라사테"라는 칭호를 듣게 되었습니다. 말년에는 바르셀로나정착하여 살다가 1909년에 타계하였습니다.

그는 Recuerdos de la Alhambra, Capricho Arabe, Danza Mora 등등의 오리지널 기타 작품들을 썼을뿐 아니라, 베토벤, 쇼팽, 멘델스존을 포함하는 다른 사람들의 작품들을 기타곡으로 편곡하기도 하였습니다. 친구였던 Isaac Albeniz 등 몇 명의 동 시대 스페인 사람들이 그러하였듯, 그도 당시의 고전 음악계를 풍미하던 로맨틱 경향을 스페인 민속 요소들과 결합시키는 데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열정적인 Asturias (Leyenda)를 포함하여 Albeniz의 피아노곡 여러 개를 기타로 편곡하였습니다. 동 시대의 저명한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였던 Angelo Gilardino는 타레가의 [9개의 전주곡]을 가리켜 "... 타레가의 가장 심오한 음악적 사상이 가장 농축된 형태"라고 쓰기도 하였습니다.

타레가는 20세기 클래식기타 테크닉의 기반을 구축하고, 연주회용 악기로서 기타에의 관심 증대에 혁혁한 공헌을 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또한 그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듣는 곡 'the Nokia ringtone, Nokia Tune' 또는 그냥 간단히 'Nokia'의 작곡자이고, 또 그 밖의 여러 광고 프로그램들에 그의 'Gran Vals'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의 음악은 또 Mike Oldfield에게 영감을 주어, 연습곡 "The Killing Fields"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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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 정상수 님 자료('94.10.22)에서 문법/문맥을 약간 손질한 "타레가 해설"을 덧붙입니다. >

기타는 악기사상 가장 오랜 역사와 빛나는 전통을 가진 발현악기이며 비엘라(Vihuela) →류트 (Lute)→기타(Guitar)의 과정을 거치면서 개량, 보급되었고, 16 세기경부터는 시인 에스피넬(V.Espinel), 의사 아마트(J.C.Amat)에 의하여 기타음악이 발전 되었고, 코르베타(F.Corbetta), 산즈(G.Sanz), 드 비제(R.de Visee)등으로 더욱 찬란한 전고전시대를 형성하였으나 바이올린 등 궁현악기의 발달로 말미암아 기타는 점점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18 세기에 들어서면서 모레티(Moretti), 아구아도(D.Aguado)등에 의하여 기타음악이 재현되면서 소르(F.Sor), 쥴리아니(M.Giuliani), 카룰리(F.Carulli), 카르캇시(M.Carcassi)등이 계속 출현하여 기타음악은 제1기 황금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황금기 이후 19 세기로 접어들면서 피아노의 발달과 오케스트라의 확대, 바그너에 의한 오페라의 부흥으로 기타음악은 역사상 가장 쇠퇴 현상이 일어나면서 기타는 단지 노래와 춤을 위한 반주나 일반 대중들의 오락악기로서 다루어져 왔다. 예컨대 슈베르트는 피아노가 흔치 않았던 시절에는 가곡의 반주로 피아노 대신 기타를 대용으로 쓰곤 했던 것이다. 그후 많은 관심있는 음악가들이 기타의 연주법의 개발에 우선적으로 주목하게 되었다. 그러나 기타는 대규모 연주홀에 부적합하다는 근본적인 단점을 갖고 있었으며 기타 음악의 작곡도 그 기술적인 화려한 면에 늘 묶여 깊이 있는 곡이 나오기가 어려운 상태였다.


이때 스페인에서는 현대 기타음악의 시조이며 기타의 로만시대를 장식한 거봉이며 기타의 [사라사테]라는 절찬을 받은 프란치스코 타레가(Francisco Tarrega Eixea)가 1852년 11월29일 스페인의 바렌시아주 카스텔론의 빌라레알에서 한 가난한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타레가는 8 세 때 맹인 기타리스트 마누엘 곤잘레스(M.Gonzales)에게 처음으로 기타지도를 받고 이어 훌리안 아르카스(Fulian Arcas), 토마스 다마스(T.Damas)를 사사하였다. 타레가는 한 후원인의 도움으로 바렌시아에서 공부를 하였으나 그가 사망한 후에는 브리아나로 가서 기타교수 생활로 가난하게 생계를 유지하였다. 그러던 중 브리아나의 재벌을 만나 마드리드 국립음악원에 입학할 수 있었고 1875년에는 콩쿨에서 1등을 획득했으며 피아노, 바이얼린 작곡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얻었다. 그 후 타레가는 기타리스트로서 마드리드에 데뷰이래 스페인은 물론 런던, 파리, 스위스 등을 연주 여행 했으며, 기타의 "사라사테"라는 절찬을 받았다.


그는 기타에 관한 일관된 애정을 갖고 있었다. 처음에는 피아노를 공부한 그가 기타에 전념하게 된 것은 마드리드 음악원에 입학하고 부터였다. 기타의 어떤 모습도 타레가가 이 악기로부터 회의를 품도록 만들지 못했다.마드리드 국립음악원을 졸업한 타레가는 그곳 알함브라극장에서 기타연주회를 성공적으로 가졌으며 바르셀로나, 마드리드 등 전국 주요도시의 순회 연주회에서 타레가 특유의 신선하고 독특한 연주를 하여 절찬을 받았다. 1881년에는 파리, 런던등지에서 연주, 귀국후에는 스페인 전역에 걸쳐 연주여행을 가졌고 결혼하여서는 바르셀로나에 정주하였다. 타레가는 겸손, 온화, 학구적인 성격으로 그는 화려한 스테이지를 멀리하는 한편 기타 예술의 탐구를 위한 엄격한 수도자의 생활을 하였다.


타레가가 이룬 많은 업적 가운데 일부는 기타로 하여금 그 소리가 더욱 맑게 울려 퍼지도록 한 것과 기타의 울림에 풍부한 색채감을 준것, 그리하여 복잡한 악곡들을 기타로 연주할 수 있게 한 것 등이다. 이 모든 업적은 기타의 주법 개발과 기타의 디자인 혁신으로 인해 가능했다. 타레가는 음색의 가능성을 무한히 확장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타레가가 기타를 위해 손을 댄 작품으로는 기타 자체를 위한 오리지널 작품과 모짜르트, 하이든, 슈베르트, 베버 그리고 바그너까지 이르는 광범위한 편곡작품이 있다. 이 위대한 기타 음악가의 작품에서 우리는 대단한 개성과 스페인의 철저한 향토성을 감지하게 된다. 그는 투리나(Turina), 토로바(Torroba), 팔라(Falla), 빌라로보스(Villa-Lobos)로 이어지는 스페인 음악의 첫 주자였다. 단순하고 명상적인 <전주곡>은 Lagrima(눈물)라는 부제를 갖고 있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마주르카의 두 제목은 여자의 이름을 나타내는데 그 특징은 틀림없이 음악에 비추어져 있는듯 싶다. "13개의 전주곡", "알람브라의 회상", "아라비아 기상곡" 등 작곡, 편곡을 합해 300곡 이상의 걸작이 있다.


타레가는 젊었을 때부터 지병인 안질로 계속 번민해왔고 노년에는중풍이 발작하여 1919 년까지 고생하던 끝에 그해 12월 5일 바르셀로나에서 서거하였다. 타레가는 생애의 반을 손톱을 사용한 주법으로 연주했으나 자신의 손톱에 결함이 생겨 손톱없이 연주할 수 있는 방법을 수개월간 연구끝에 바르셀로나에서의 마지막 연주회까지 손톱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타레가의 직계문하이며 유일한 생존자 에밀리오 푸홀(E.Pujol 1886~ 스페인)은 타레가가 손톱없이 연주하게 된 원인은 타레가 자신의 손톱에 결함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도 살이외의 불필요한 물질을 사용하여 탄주하는 것보다 신경과 직결될 수 있는 살을 사용함으로서 감정을 더욱 풍부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현대의 기타리스트 중에서 타레가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며 타레가가 존재하지 않았던들 지금의 기타는 진로가 어떻게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타레가는 종래의 기타 연주나 작곡에서 철저한 개혁을 하였으며 아구아도 주법을 떠나 기타 연주 기법의 백지상태에서 기타가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극한까지 연구 , 개척하였다. 왼손의 운지법, 오른손의 탄주법, 또는 음색, 음량의 풍부한 변화와 화음의 확충등, 수 많은 업적은 우수한 문하생들에게 계승되어 20세기 기타 르네상스를 낳게 하였다. 현재 타레가의 유해는 출생지인 카스텔론에 안장되어 있으며 프라아나에는 타레가 일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기념상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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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tar 429 2005. 11. 12. 07:12

그라나도스





Don Enrique Granados y Campigna

(1867. 7. 27 ~ 1916. 3. 24)

[엔리끄 그라나도스]는 스페인 작곡가피아니스트였고, 또 Goya 풍의 재능있는 화가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대표적인 음악적 민족주의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선지 그의 음악은 유례가 드문 스페인 스타일입니다. 알베니즈와 함께 스페인 근대파 음악의 선봉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19 세기말의명 피아니스트로, 마넹, 티보, 카잘스, 생상스 등과 함께활발한 연주활동을 하였으며, "아카데미 그라나도스"라는 피아노 학교를 설립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1867. 7월 27일 스페인 Catalonia의 Lleida에서 태어났습니다. 청년기에 Barcelona에서 피아노 공부를 하였는데, 거기서Francisco JurnetJoan Baptista Pujol 등을 스승으로 모셨습니다. 1887년에는 파리에 유학하였다가 1889년에 바르셀로나에 돌아왔습니다. 그의 첫 성공은 1890년대 말, "zarzuela Maria del Carmen"이 국왕 알퐁소 8세의 주목을 받았을 때였습니다.

1911년에는 피아노 모음곡 "Goyescas"를 초연하였는데, 그것이 오늘날까지도 그의 최고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 작품은 Goya의 그림들을 주제로 한 6 곡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공연이 너무 성공적이어서 그는 그걸 확장하고픈 의욕에 넘쳐, 1914년에 동일한 주제로 오페라를 하나 썼는데, 하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유럽의 초연이 취소되었습니다. 결국 그 작품은 1916년 1월 26일 뉴욕에서 초연되었고,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 후 곧 그는 윌슨 대통령을 위한 피아노 연주회에 초청 받았습니다.

불행히도 그 연주회 초청을 수락함으로써 스페인으로 귀국하기로 했던 배를 놓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대신 영국 리버풀 행 배를 탔고, 리버풀에서는 프랑스 Dieppe로 가는 Sussex호에 옮겨 탔습니다. 영국해협 횡단 중 3월 24일 서섹스호는 독일 잠수함에게 어뢰를 맞았습니다 (1차 대전 중 독일은 잠수함의 무차별 공격방침을 감행하였음). 그는 구명보트를 탔지만, 저만치 물 속에서 허위적거리며 멀어져가는 아내 Amparo를 보자 그녀를 구출하려고 보트에서 뛰어내려함께익사하였습니다. 아이러닉하게도 그에게는 평생 물 공포증이 있었는데, 생애 최초의 대양항해로부터 귀환하는 도중에 사망한 것입니다.

그라나도스는 피아노 음악과 실내악곡(피아노 5중주, 바열린과 피아노를 위한 곡), 성악곡, zarzuelas 및 단테의 신곡에 근거한 관현악 교향시 등을 썼습니다. 그의 피아노곡들 중 많은 수가 guitar 곡으로 편곡되어 오늘날 기타 레퍼터리 중 가장 아름다운 곡들의 반열에 들어 있습니다. Dedicatoria, Danza No. 5 등이 그대표적 예입니다.

그라나도스는 스페인의 중요 음악가들 중적어도 2 명(Manuel de FallaPablo Casals)에게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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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니즈 스페인 선율

Isaac Manuel Francisco Albeniz

(1860. 5. 29 ~ 1909. 5. 18)

[이삭 알베니즈]는 스페인의 피아니스트작곡가였으며, 스페인 민속음악에 기초한피아노 작품들로 유명합니다.
스페인 Catalonia의 Camprodon에서 태어난 알베니즈는 네 살 때 첫 연주회를 가질 정도의 신동이었습니다. 일곱 살에는 파리음악원의 입학시험에 합격하였으나, 호주머니에서 공을 꺼내 가지고 장난치다가 유리창을 깨는 바람에 입학을 취소 당했습니다.결국마드리드음악원에 가게 되었지만, 그는 도망나와 연주로 생계를 유지하며 떠돌이 생활을 하였습니다. 15 세에는 이미국제적인 연주회 경력의 소유자가 되었습니다. 라이프찌히음악원에도잠시다닌 후, 1876년에 Brussels에 공부하러 갔습니다. 1880년에는 Franz Liszt와 함께 공부하고 싶어서 부다페스트로 갔지만, 리스트는 이미 독일의 Weimar로옮긴 뒤였습니다.
그는 1883년에 만난 작곡스승 Felipe Pedrell의 영향을 크게 받아 "에스파냐 조곡 (작품47)" 같은 스페인 음악을 많이 쓰게 되었습니다. 그 조곡의 제 5악장은 "Asturias (Leyenda)"라고 불렀는데, 피아노 원곡을 친구이던 Francisco Tarrega가 나중에 Guitar로 편곡하여, 오늘날 클래식기타 계에서 아마도 가장 유명한 곡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그의 많은 작품들이 역시 후에 기타로 편곡되었는데 - 알베니즈 자신도 타레가의 편곡을 자신의 피아노 원곡들보다 더 좋아하였습니다.
1890년대에는 런던파리에 살며 극장용 작품들을 주로쓰다가, 1900신장병을 앓기 시작하면서 본래의 피아노 작곡가로 되돌아왔습니다. 1905-09 사이에는 그의 최고 걸작인 12 곡의 피아노 "인상파" 작품집 "이베리아 조곡"(1908)을 작곡하였습니다. 그는 또한 Spanish Rhapsody (1887) , Catalonia (1899)등의 관현악 작품들도 썼습니다.
1909년 피레네 산맥의Cambo-les-Bains에서 49 세로 타계하여, 바르셀로나Cementiri del Sudoest에 안장되었습니다.
프랑스 정치인 Nicolas Sarkozy의 부인 Cecilia Sarkozy는 그의 증손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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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수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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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채 오픈 1주년을 맞이하여, "Guitar음악"을 부분적으로나마 공개하려고 합니다.

그동안 꽤 많은 Guitar 곡들을 여기 사랑채에 놓아두고 혼자 즐겨왔습니다. 현재 400여 곡이 이미 올라와 20여 개의 "비공개" 페이지에 숨어 있고, 그 밖에 또 400여 곡이 아직 정리가 덜 끝난 상태로 업로드 대기중입니다. 그러나 그 모두를 일거에 공개하기는 좀 곤란합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각 페이지의 구성 스타일이 손님 접대용으로는 다소 부적절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기존의 비공개 페이지들은 그대로 둔 채, 틈 나는대로 하나하나 새롭게 다듬어 차근차근 공개 페이지를 추가해 나갈 예정입니다. ["저작권" 관계상, 동일한 곡이라도 가급적 '희귀'버전 위주의 선곡이 될 것이며, 대개의 경우 연주자를 밝히지 않을 터이니 그렇게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일수거인 소시쩍한 때 Guitar에 흠씬 매료되어 지내던 시절이 있어, 아직도 그에 대한 애착은 남다른 데가 있습니다. 국내에서 인쇄된 악보 하나 없고 제록스 복사기도 출현하기 훨씬 전인 1966년(대학입학 이듬해),우아하면서도 애틋한 음색과 악기를 가슴에 끌어안는 연주자세가 마음에 들어서,일본에서 나온 악보들을 어렵게 빌려다가 밤새 오선지에 베껴 가며 혼자 배워 혼자 즐기는 그야말로 "혼자만의 취미"로 시작하였는데, 어찌어찌 하다보니 이런 저런 무대에 불려다니는 일도 많아졌더랬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는 바쁜 직장생활, 가정생활 등쌀에 규칙적인 연습이 불가능해지면서 - 실력유지조차 도통안 되는 데에화가 나서 - 수십년간 악기를 모셔만 놓고 만지지도 못 한 채 지내오게 되었지요. (어떤 악기든 연주솜씨의 유지 또는 향상을 위해서는 규칙적인 연마가 필수적인데, 특히 Guitar는 그런 점이 한층 더 두드러진 악기인 듯합니다.) 최근들어 시간 여유가 조금 생겨 참으로 오랜만에 손톱을 정성들여 손질하고 Guitar를 꺼내어 줄을 갈아끼우고 살살 만져보기 시작했는데..., 아아, 역시 우려했던대로 손놀림이 "생각"과 너무 동떨어져 낙담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다시 꾸준히 연습해 보려고는 하지만, 이젠 나이도 있고 해서인지손가락 근육들이예전처럼 말을 듣지 않는 것 같아, 그저 왕년의 레퍼터리 중에서 비교적 쉬운 곡들을 골라 심심풀이 삼아 퉁겨볼 뿐, 무대 발표 등의거창한 기대는 더이상 가지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옛날 한창 열심히 할 때의 제대로 된 녹화나 녹음 자료가 있었더라면, 지금 사랑채에 "일수거인 연주" 버전을 자랑스레 올려 놓을 수 있으련만..., 사실 그 땐 비디오는커녕 흑백사진마저도 매우 드물었던 시절이어서 지금 변변한 녹음자료조차 거의 없는 것이 참 아쉽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열심히 연습하다 보면 혹시 어떤 곡들은 "녹음할만한" 수준까지 솜씨가 회복될 가능성도 아주 없진 않습니다. 다행히 그렇게 된다면 사랑채의공개 페이지 하나 정도는 일수거인 연주곡들만으로꾸며볼수도 있겠지요. 현재의 기대 수준은 그런 정도입니다.

약 25(?) 년 전, 일수거인이 서울 고덕동에 살던 때,총각이던 둘째 처남이 매형의 Guitar연주를 듣고 싶다며 종종 놀러오곤 하였는데, 어느일요일 그가휴대용 카세트기기를 가져와 거의 온종일 녹음을 한 적이 있습니다. 몇 년 전, 장인어른 장례를 마친 후,무척오랜만에 만난 그가, 그 옛날 녹음해간 자료 중에서 비교적 무난한 것 몇 개를 디지털(wave file)로 변환하여 보관해 두었던 거라며 cd 한 장을 건네 주었습니다. 내심 말할 수 없이 반가웠지만, 스튜디오도 아닌 소형 아파트 거실에서 녹음 성능도 보잘 것 없는 보급형 카세트기기로 녹취했던 것이라, 우선 음질이 시원치 않은데다두어 군데 음이 꼬이거나 끊기고, 또, 어딘지 자신의 연주 특성(곡해석)과는 약간 다른듯한 (밋밋한) 느낌이 들어, "내 연주가 아닌 것 같다"고 했더니, "그 무슨 섭한 소리냐? 다른 사람 연주는 한 번도 녹음해 본 적이 없다. 세월이 많이 흘러 그 곡에 대한 매형 자신의 느낌에 얼마간의 변화가 있을 순 있겠지만, 이건 틀림없이 내가 엄숙히 보증하는 그 당시 매형의 연주니까 그리 알고 딴 소리는 제발 하지 말아달라"고 얼굴을 붉히므로, "그렇다면 정말 귀한 거네, 참 고마우이" 하고 받아서 mp3로 만들어 두었습니다.아래에 있는 연주기를 켜면그 중 한 곡이 나옵니다. 한 때 일수거인 "10 대 레퍼터리" 중 하나로 꼽히던 대곡이지요.혹시 지금 사랑채배경음악이 들리고 있으면 일단 그걸 끄시고, 요즘 세상에서 "희귀본"임이 틀림없는일수거인의연주 한 번 감상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연주시간 : 8분35초)

[Gran Solo composed by Fernando Sor]

예나 지금이나 Guitar는사랑스런 악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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