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uro, ('Strauss of the Guitar')
Antonio Lauro (1917. 8. 3~ 1986. 4. 18)
베네주엘라의 Ciudad Bolivar에서 태어나고Caracas에서 서거한[안토니오 라우로]는 20세기 남미 최 정상의 작곡가들 중 하나였습니다.
이발사였던 아버지는 노래와 guitar 연주를 즐겼는데, 안토니오가 5 살 때 돌아가셨고, 그 해에 온가족이 카라카스로 이사하였습니다. 안토니오는 "Academia de Musica y Declamacion"에서 피아노와 작곡 등 전통적인 음악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거기 스승들 중에는 저명한 작곡가 Vicente Emilio Sojo (1887-1974)도 있었습니다. 1932년, 파라과이의 전설적인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인 Agustin Barrios의 연주회가 카라카스에서 열렸는데, 이미 민속 기타리스트로 행세하고 있던 젊은 안토니오는 그 연주를 듣고 크게 감명을 받아, 피아노나 바이얼린을 다 그만두고 guitar에만 전념키로 결심하였습니다. 1933년부터는 Raul Borges (1888-1967) 밑에서 공부했는데, 라우로는 그에게서 전통적인 클래식기타 레퍼터리를 소개 받았습니다. 그 후 10년간은 Rodrigo Riera, Jose Rafael Cisneros, Alirio Diaz 등도 Borges의 제자가 되었고,그 중Alirio Diaz는 훗날 라우로의 작품들을세계 청중들에게 선보여 깜짝 놀라게 하고, Andres Segovia와 John Williams에게 참신하고도 생소한 안토뇨 라우로의 작품들을 소개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의 많은 남미인들과 마찬가지로 라우로도 열렬한 문화적 민족주의자였으며, 자기 나라의 음악적 자산을 보호하고 세상에 알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1935~1943년 사이에는 "Trio Cantores del Tropico"의 단원으로 (베이스 파트 노래도하고 guitar와 cuatro를 연주하면서) 이웃 나라들을 여행하며 베네주엘라 음악을 소개하였습니다. 라우로는 그 앞 세기에 Ramon Delgado Palacios (1867-1902) 등 명망있는 국가적 작곡가들이 창작한 가지각색의 식민지풍 실내악 왈츠들에 특히 매료되었습니다. 선명한 선율, 교차하는 그리움, 화려하면서도 뚜렷한 싱코페이션 (3/4박자 마디 2개를 3/2박자 마디 한 개로 바꾸는 헤미올라 기법)으로 특징지어지는 그런 음악들은예외 없이그의 민속학적예술 활동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유럽에서 스메타나나 그라나도스 같은 사람들이 조국의 민속 선율들을 민족예술로 승화시킨 것에 비견될만 합니다.]
베네주엘라의 걸출한 피아니스트 Evencio Castellanos (1914-1984)의 연주회가 그런 왈츠들로만 편성된것을 보고,라우로는 guitar도 역시 그런 곡들을 레퍼터리로 하는 게 좋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장르에서의 초창기(1938~40) 노력들이 훗날 Tatiana, Andreina, Natalia 등의 명곡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그에게는 기타곡들 말고도, 관현악, 합창, 피아노, 독창곡 등의 작품들이 수십 개 있으나 대부분 출판되진 않았습니다. 그는 가끔 현대 작곡기법을 시험해보기도 하였으나, 그의 기타 작품 대부분은 본질적으로 "정통파"입니다. [즉, 현대적 변형화음들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1951~52년 사이에 Marcos Perez Jimenez 장군의 군사임시정부는 민주주의 신념을 이유로 라우로를 투옥하였습니다. 나중 그는 친구들에게, 감옥이란 그 세대의 베네주엘라 남자에겐 정상적 생활의 한 부분이라고 말하면서, 그 경험을 가볍게 떨쳐버렸습니다. 그는 옥중에서도 작곡을 계속하여, 출옥 즉시 새로 결성된 개척적인 프로 클래식기타 3중주단 “Trio Raul Borges”에 합류하였고,그로부터 몇 십 년간 라우로의 작품들이 전 세계에서 출판되고, 녹음되고, 연주되면서, 어디서나 그의조국 음악에 대한공헌이 알려지고 칭송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Juan Jose Landaeta Conservatory 등 저명한 음악학교들의 초빙교수를 역임하였고 베네주엘라 교향악단의 단장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연주가라기보다는 작곡가라고 겸손한 주장을 하였지만, 친지들은 그를 설득하여 순회 독주회에 나서게 했는데, 베네주엘라에서 시작하여 1980년 런던 Wigmore Hall에서의 성공적 공연으로 연주 생활의 정점에 도달하였습니다. 1986 년,서거 직전 조국 최고의 예술상인"Premio Nacional de Musica"를 수상하였습니다.
다음은 그의 유명한 작품 몇 개를 살펴보겠습니다.
Seis por derecho: Joropo, subtitled al estilo del arpa venezolana = 활기 넘치는 시골 댄스곡의 성곡적 버전입니다. vals venezolano처럼, joropo는 hemiola를 광범위하게 사용합니다. 여기서는 6/8박자와 3/4박자가 교대로 나오죠. 이 곡의 제목은 베네주엘라의 대평원 주민들에게서 따왔습니다. 그들 특유의 집요한 리듬 (6/8 = seis)을 사용토록 허용하여 그런 제목을 붙일 권한을 준 겁니다. 그 뒤에 녹음된 4 곡은 베네주엘라 고전 왈츠들인데, Maria Carolina는 1983년에야 출판되었고, 원 제목은 Iliana였으나 작곡자가 조카딸 이름을 따서 고친 겁니다. El Marabino (보통은 "Maracucho")는 그가 한 때 살았던 중요 도시 Maracaibo의 원주민을 뜻합니다. 라우로는 제자 Luis Zea에게, "새 작품을 쓰고 그것에아내 이름을 따서 Maria Luisa라고 제목을 붙였는데 진짜 그녀만큼 까다로운 곡이야" 하고 말한 적이 있다는데, 훗날 라우로 부인이 그 말을 듣고 박장대소하였다고 합니다. 실은 매우 로맨틱한 곡입니다. 그 곡의 제2부는 쇼팽의 Ab 장조 왈츠 op.69 no.1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Angostura는 그가 출생한 Ciudad Bolivar 시의 옛 이름입니다.
라우로는 옥고를 치르는 동안 인상적인 Suite Venezolana를 작곡하였습니다. [Registro (Prelude), Danza Negra, Cancion,Vals로 구성됨]희한하게 명명한 첫 악장 Registro는 일종의 즉흥연주라는 뜻으로, 연주자가 손을 풀거나 새 악기나 손에 익지 않은 악기를 시험해 볼 수 있게 되어 있어서, 원래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에서 사용된 ricercare와 대등한 성격입니다. 라우로는 그의 Suite para piano 첫 악장에도 동일한 이름을 붙였습니다. Danza negra는 화려하고도 매우 어려운 곡입니다. 국제 가타 콩쿠르에서 주요 지정곡이나 최후 도전곡으로 자주 채택되곤 하지요. 성숙한 기교 뿐 아니라 난삽한 베네주엘라 리듬에 대한 견실한 구사력을 요구합니다. 그것은 주로 San Pedro라는 베네주엘라 민속음악에서 따온 아프리카 풍의 베네주엘라 춤곡입니다. 마지막의 2 개 악장 a typical cancion de serenata 및 a vals에서는 다른 인기곡 La Tumba를 차용하였습니다. 1971년에는 왈츠곡 El nino를 써서 장남 Leonardo에게 헌정하였습니다.
4 Valses Venezolanos의 첫 3 곡은 1938-40년 사이 Trio Cantores del Tropico와 함께 에콰도르를 여행하던 중에 작곡하였는데, 몇 년 후 출판하고 나서야 그는 각각 조카딸 Tatiana, 누이 Andreina, 딸 Natalia의 이름을 붙이기로 하였습니다. 마지막 곡은 단연코 라우로 최고의 곡인데, Vals criollo (Segovia녹음시), 또는 Vals No.3 (1963년 출판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네 번째 왈츠 Yacambu는 호기심 많은 반음계주의와 뜻밖의 화음들이 곁들여진 론도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서부 베네주엘라의 그림 같은 풍경을 자랑하는산악지대를위하여 이름을 붙였습니다.
El Negrito (막내 아들 Luis Augusto를 뜻함)과 La Gatica (아내의 별명, 고양이를 뜻함)은 1984년에 출판 되었는데, 한 쌍의 남녀가 연주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라우로의 Triptico는 3 개의 E단조 곡으로 구성된 것인데, Andres Segovia의 요청에 따라 하나로 모은 겁니다. 그 첫 곡 Armida는 누이의 이름을 딴 명상적 노래입니다. Madrugada (동트기 전)은 Sojo의 몇 안 되는 기타 작품 중 하나에서 영감을 얻은 앞꾸밈음 공부 용인데, 존경했던 대가 스승의 타계 직후인 1974년에 작곡하였습니다. La Negra는 조카딸 Armida의 별명이었는데 - 그 엄마인 라우로의 누이도 이름이 같았음 - 이 왈츠 소품은 1976년 8월에 작곡하였습니다.
Variaciones Sobre Una Cancion Infantil [venezolana]는 "19세기 기타리스트들에 대한 경의"를 담고 있습니다, 즉, "주제와 변주" 형식을 사랑했던 Sor, Giuliani, Carcassi 등등을 위해서 쓴 곡입니다. 선율의 전반부는 어린이 노래 Palomita Sentada이고 후반부는 라우로 작곡입니다. 그는 그 소곡이 너무 짤막하여 성곡적으로 전개시키기 어려웠다고 술회하였습니다. Carora는 기타의 대가 Alirio Diaz가 즐겨 연주하는 왈츠가 되었습니다. 라우로가 그에게 제목을 붙여달라고 청하자, 디아즈는 서부 베네주엘라의 Lara 주에 있는 도시인 자기 고향 (친구 Rodrigo Riera의 고향이기도 함) 이름을 붙였습니다.
라우로의 작품들은 전 세계적으로 기타리스트들에게 오래 인기를 누려오고 있지만,자신의 녹음은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John Williams와 David Russell의 녹음이 몇 개 있어서 - 이 두 거장이 이미 Agustin Barrios Mangore를 위해서도 그랬듯이 -라우로를그 명성에 걸맞는 명예의 전당에 모신 셈이 되었습니다. John Williams는 안토니오 라우로를 "Strauss of the guitar"라고 칭송함이 마땅하다고 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