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르 맛보기



Fernando Sor (1778. 2. 14 세례 ~ 1839. 7. 10)

일수거인에게 존경하는 guitar음악가를하나만 들라면,

단연코 소르를 꼽을 겁니다. 그의 음악은 깊이와 격조에서,

미상불베토벤을 연상케 합니다.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난 [페르난도 소르]는 기타리스트작곡가로, 스페인에서는 '기타의 베토벤'으로 칭송받고 있습니다.

대대로 군인 가문을 이어온 상당히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소르는 당초 가문의 전통을 이어가기로 하였으나, 아버지가 그를 이탈리아 오페라에 데리고 다니면서부터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그는 음악과의 사랑에 빠져 군인이 되기를 포기한 것입니다. 오페라 말고도 부친은 그에게 guitar를 접할 기회도 주었는데, 당시는 기타라는 악기가 관현악단용 악기들에 비하여 열등하다고 여겨져 기껏 선술집 같은 데서나 사용되는 게 고작이던 시절이었습니다.

소르가 바르셀로나 근교 산악 Montserrat의 한 수도원에서 음악을 공부하던 중 부친이 돌아가시자, 어머니는 그의 공부를 계속 시킬 재정을 감당할 수 없어 그를 집에 데려왔습니다. 그가 초기기타곡들을 쓰기 시작한 곳이 바로 그 수도원이었습니다.

1808년, Napoleon Bonaparte가 스페인을 침공하였을 때는 민족주의적 기타음악을 작곡하기 시작했는데, 흔히 애국적인 가사를 붙이기도 하였습니다. 스페인 군대가 패배한 후, 소르는 점령군 정부에서 사무직에 종사한 적이 있습니다. 1813년 스페인이 프랑스 군대를 몰아낸 후, 프랑스인들과 잘 지냈던 소르를 비롯하여 다수의예술가들이 보복을 두려워한 나머지 스페인을 떠났습니다. 그는 파리로 가서 다시는 스페인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작곡 기법과 기타 연주 솜씨로 파리 예술계에서 인정을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결국 유럽 각처를 순회하며 많은 명성을 떨쳤습니다. 1827년, 나이와 건강을 핑계로 여생을 파리에 정착하여 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가 전보다 좋은 작품들을 많이 작곡한 것은 바로 이 은퇴 시기였습니다.

그의 마지막 작품은 1837년에 세상을 떠난 딸을 위한 미사곡이었습니다. 그 딸의 죽음은 이미 병들어 있던 소르에게 심각한 우울증세까지 겹치게 하여, 그는 1839년 불우하게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역사가 소르의 스타일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는 William Newman의 논평에 잘 요약되어 있습니다: "소르의 기타 소나타들의 창작적 가치는 매우 높다. 그 악기로부터 생겨나고 자라났으되 그 악기로부터 독립하여 우뚝 선 아이디어들은 신선하고 독특하다. 전개부에서는 대담하고도 풍부한 변조를 동반하면서 화음들이 교묘하고 놀랍게 변화한다. 전체적 기조을 이루는 선율이 고음에서 저음과 중간음 부분으로 이동하고, 자주 대위법적 편린들이 추가되면서 매우 자연스럽게 듣는 이의 흥취를 돋운다. 전개된 형식들 중에서는 첫 알레그로 악장들이 '소나타 형식'을 엄격히 적용하지만, 많은 아이디어들이 새로 도입되고 뒤에서 재현되기를 반복하는 가운데 여전히 상당한 유연성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는 하이든과 보케리니의 스타일로 되돌아가는 느낌이다. 특히 고전 교향곡들에서 발견되는 신택스와 반주부의 모든 정연함을 갖추고 있는 작품22 "Grand Sonata"의 제1악장에서 특히 그런 점이 두드러지며, 하이든의 미뉴엣과 론도처럼 멋진 진행을 보여주는 제3악장과 제4악장에서도 역시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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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 정상수 님 자료('94.10.22)에서 문맥/문법을 약간 손질한 "쏘르 해설"을 덧붙입니다. >
19 세기 초 고전파 음악의 대표적인 guitar 작곡가로는 카탈로니아 출신의 작곡가 겸 기타리스트였던 페르난도 소르를 들 수 있는데, 그의 작품은 그 시대의 다른 작곡가의 작품보다 오늘날 널리 연주되고 있다. 그는 본명이 호세 마카리오 페르난도 소르스 이 소르스(Jose Macario Fernanado Sors y Sors)이며 1778년 2월 14일 (1880년 2월 17일생이라는 설도 있음)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출생하였다. 소르는 18 세기 말에서 19 세기초까지 활약한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이며 이태리의 쥴리아니 (M.Giuliani)와 함께 고전파의 쌍벽을 이룬 존재였다.

5 세 때부터 작곡을 할만큼 신동으로 주위의 주목을 받을 만큼 천부적인 음악의 재질을 타고 났으나 그이 부친은 그가 군인이나 문관이 될 것을 기대했었다. 부친이 사망한 후 어머니의 동의를 얻어 소르는 카탈로니아의 몬토세라토 수도원 부속학교에서 바이얼린, 첼로, 화성학, 대위법 등을 공부하여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았다. 당시 유럽에서는 이태리 가극이 전성을 이루었고 오페라에 감명을 받은 소르는 최초로 [칼립소섬의 텔레마코]라는 오페라를 작곡하여 1797년 8월 25일 바르셀로나의 프린시플 극장에서 상영하여 호평을 받았다.

그는 20대 초반에, 고야의 후원자이기도 하였던 알바 공작부인의 가족으로 살았다. 그 뒤에는 당시 막강한 메디나셀리 공작의 후원을 받게되었으며 오페라, 교향곡, 오라트리오, 3개의 현악4중주, 여왕봉 찬가, 피아노 또는 기타반주의 스페인 가곡등 창작활동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편안했던 이같은 생활은 요셉 보나파르트가 스페인에서 괴뢰 정부를 세움으로써 끝나고 말았다. 소르는 그 당시 고야를 포함한 많은 스페인 지식인들과 함께 프랑스 해방 운동에 가담하였다. 그러나, 영국의 지원으로 스페인의 왕위가 부활되자 현명한 소르는 다른 동지들과 함께 스페인을 떠나 파리망명하여 예술가로서 일생을 바칠 것을 결심하였다.

그런데, 소르는 이 망명으로 인하여 국제적인 명성을 더하게 되었다. 파리에서는 그의 오페라 "신데렐라 Cendrillon"가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어, 1823 년에서 1830 년까지 무려 104 회나 공연되었다. 그의 기타 연주도 런던과 파리에서 계속 성공을 거두었으며, 그로 인하여 기타의 대중적인 인기가 다시 살아났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가 기타에 전념하게 된 것은 케루비니의 격려와 모렛티의 기타연주를 듣고 나서부터라고 하는데, 파리와 런던 등 유럽 각지를 돌면서 순회 연주회를 가져 절찬을 받았으며, 또한 기타 음악 교사와 발레음악 작곡가로서도 명성을 얻게 되었다.

1817 년 소르는 영국으로 건너가 마침 기타음악의 개화기였던 런던은 소르의 재능을 최대한 발휘하는 기타연주에 열광적으로 호응하였다. 또한 소르는 Op.1 "6 개의 위악곡"을 1819 년 출판하였으며 기타를 위한 작품활동은 물론 오페라 작곡과 상을 계속하여 호평을 받았다. 런던시대의 소르는 그의 생애를 통하여 가장 화려한 명성을 떨치는 시기였으나 경제적으로는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1823 년 파리에서 신작 발레 [신데렐라]를 상연한 후 당시 연주가들이 동경하던 러시아의 여행에서 7현 기타를 사용하던 그곳에서 6현기타의 묘기를 보여 절찬을 받았다. 페데르부르그 (레닌그라드)에서는 국왕 알렉산더 1세의 장례를 위한 장송 행진곡을 작곡하였으며 모스크바에서는 니콜라스 1세의 즉위축하를 위한 발레 [엘큐르와 옴파레]를 작곡 상연하였다.

그후 파리에서 런던, 다시 파리로 돌아와 많은 콘서트에서의 활약과 오페라의 작곡을 계속하여 그의 위대한 재능과 빛나는 업적을 남겼으며 만년에는 빈곤과 병고, 사랑하는 딸의 죽음 등으로 비참하고 불행한 생활끝에 1839년 7월 13일에 사망하였다.

소르는 '주제와 변주' 형태를 좋아해서 프랑스와 스코틀랜드의 수많은 노래를 주제로 변주곡들을 만들어냈는데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주제에 의한 변주곡도 그 유명한 예이다. <말브로우>변주곡에서 그는 고전적 전통에 의한 작법을 쓰면서 후기 고전주의와 초기 낭만주의 시대 작곡가들의 스타일을 혼용하고 있다.

소르가 영국에 거주하는 동안 쥴리아니와 예술적 대립, 즉 소르의 우아하면서도 밝은 대위법적 악풍과 쥴리아니의 호화스러우면서도 직선적인 악풍으로 청중들까지도 두 파트로 분리시켰다.

소르는 아구아도(D.Aguado 1784~1849 스페인)와 깊은 우정을 나누면서 한때는 수년간 동거도 하였으며 서로의 예술을 깊이 연구하였다. 아구아도의 손톱을 사용한 주법에 반하여 소르이 손톱 없이 하는 연주로 상반된 주법을 사용하였으며 서로 존경하며 우의를 두텁게 하였다고 전해진다. 당시 소르는 두사람을 위한 연주회용 2중주곡인 [L'encouragement]를 작곡하였으며 이곡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세계적 기타리스트들에 의하여 자주 연주되고 있는 명곡이다.

그의 많은 교육적인 작품은 기타의 연주 수준을 높이려는 의도에서 쓰여졌으며, 매우 흥미롭게 쓰여진 그의 교본은 스페인어와 프랑스어 그리고 영어로 번역되었다. 그는 교본에서 기타의 기술적인 면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으며, 손톱의 사용이 편하다고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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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수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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